전시실

The Founder of Hanyang

ZONE 2 한양대학교는 사랑의 실천이라는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교육, 음악, 인권운동, 언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그가 일군 성과들은 목표가 아닌 사랑을 실천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일제강점기, 해방과 6.25 전쟁 등 정치적, 경제적 대혼란기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신념을 펼쳐나간 원동력이자, 지난 세기 대한민국의 발전을 이끈 저력입니다.

“음악은 인간에게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중요한 기능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아름다운 인류, 아름다운 인간, 아름다운 생을 노래함으로써
국가와 민족, 모든 국민이 아름다워진다면
인류 세계도 아름다운 하모니의 세계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별과의 교감으로 빚은 선율, 음악에서 찾은 희망의 별

여덟 살 때부터 바이올린 연주를 시작한 김연준 박사는 일찌감치 ‘음악이 지닌 탁월한 힘’을 깨닫고 우리 민족을 세계에 알리는 음악가를 꿈꾸었습니다. 연희전문학교 음악부에서 현제명 선생의 제자로 음악적 재능을 펼치며, 1938년 6월 4일 국내 최초로 ‘바리톤 독창회’를 개최, ‘천재적 바리톤’으로서의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으나 이듬해 급격한 시국의 변화로 음악이 아닌 교육자의 길을 선택하며 이후 30년간 음악을 향한 열정을 잠시 접어두게 되었습니다.

“예술은 자기 자신의 정신적 진실이 스스로의
혼을 불러일으켜 감동의 형태로 표출되는 것이므로
고도로 인간적이며, 그 예술성이 고귀하면 고귀할수록
타의 추종이나 모방을 불허하는 독자적인 것이 된다.”

민족을 향한 변함없는 사랑, 음악과 함께 청산에 살리라

한양대학교가 명실상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명문사학으로 자리매김한 1970년대, ‘신의 음성처럼 솟구치는 아름다운 멜로디’로 제2의 음악 인생을 시작한 김연준 박사는 불후의 명곡 ‘청산에 살리라’를 비롯해 총 3,000여 곡에 달하는 가곡을 발표했습니다. 1975년 일본 동경에서 열린 ‘김연준 작곡 발표회’를 시작으로 그의 음악은 점차 세계로 무대를 넓혀갔고, 1979년 독일 보훔대 초청으로 서독의 주요 7개 도시 순회공연을 마친 후에는 독일의 언론으로부터 ‘슈베르트 김’이라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음악을 통해 우리 민족의 예술성을 세계에 알리고자 했던 그의 오랜 꿈이 마침내 실현되는 순간이었습니다.

01 청산에 살리라 김연준 작사 / Sop. 양은희 노래 play
02 비가 신동춘 작사 / Sop. 김영자 노래 play
03 한양대학교 교가 김연준 작사 pl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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