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실

The Founder of Hanyang

ZONE 2 한양대학교는 사랑의 실천이라는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교육, 음악, 인권운동, 언론 등 다양한 분야에서 그가 일군 성과들은 목표가 아닌 사랑을 실천하는 과정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일제강점기, 해방과 6.25 전쟁 등 정치적, 경제적 대혼란기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신념을 펼쳐나간 원동력이자, 지난 세기 대한민국의 발전을 이끈 저력입니다.

“한 나라의 젊음을 대표할 수 있는 곳이 대학이다.
이렇듯 평이한 말이 뜻하고 있는 바는 다름 아니라,
튼튼한 젊은 문화의 핵심을 이루는 곳이
바로 대학이라는 말이요,
나아가 내일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향해 나아갈 바의
문화적 전당이 바로 대학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교육으로 이 땅의 청춘들을 마음껏 꿈꾸게 한 청년 선각자

꿈꾸는 일 조차도 억압받던 일제강점기, 김연준 박사는 25세의 청년으로 조국과 민족을 위해 원대한 꿈을 꾸었습니다. ‘기술 교육을 통해 나라를 구해야겠다’는 그의 선각자적 신념은 이 땅에 새로운 교육의 장을 마련하였고, 기술이 천대 받던 시절인 1939년 동아공과학원을 설립해 조국의 미래를 준비했습니다. 광복 이후에는 국내 최초의 민립 공과대학 인 한양공과대학을 설립해 조국의 근대화와 산업화를 이끌었습니다.

“우리가 위대한 문화를 원한다면
인간부터 큰 인물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의 교육과 그 밖의 모든 분야에서
위축되고 범용하고 왜소한 분위기를
몰아내고 마음껏 세계를 호흡하는 조건부터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미래를 준비하는 교육, 시대와 함께 진화하는 교육

한양공과대학이 ‘한국의 MIT’로 위상을 드높일 즈음, 김연준 박사는 한양의 종합대학 승격을 추진하고, 1959년 한양대학교의 초대 총장으로 취임했습니다. 이공계를 비롯해 정치, 경제, 법조계 등 각 분야의 성장을 이끄는 지도자를 배출하며 한양대학교가 국내 최고의 명문사학으로 발돋움할 때, 그는 다시 글로벌 대학으로의 도약을 준비했습니다. 늘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한발 앞서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상을 꿈꾸고 배양하는 그의 선각자적인 안목은 대한민국의 성장을 촉진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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